셰이크 자라 구역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과 논쟁
- Asher Intrater
- Jun 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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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구도시에서 다메섹문을 통해 북쪽으로 1번 도로를 따라 걸으면, 오른편에 엄청난 관광 호텔 개발이 진행 중인 부분이 나타나고 왼편으로는 초정통파 구역인 메아 셰아림이 보입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걸어 올라가면 셰이크 자라의 입구가 나타납니다. 그 다음엔 이스라엘 국경 경찰 중안 본부가 나오고, 비로소 명망 있는 프렌치힐이라는 동네, 그리고 히브리 대학교가 나오죠. 이렇게 쭉 걷는 데에 겨우 1시간 정도가 걸리니까, 거리로는 4km가 조금 넘습니다. 모든 게 아주 가깝죠.
정반대의 세계관을 가지고, 심지어 서로에 대한 격렬한 증오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돌만 던져도 닿을 거리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셰이크 자라라는 동네는 아랍인들이 사는 동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이 사는 서예루살렘에 포개진 위치에 있습니다. 이 동네는 여러 나라의 영사들이 살고 있고 유명한 아메리칸 콜로니 호텔까지 있어 꽤 잘 사는 지역입니다.
셰이크 자라 동네에 대한 현 분쟁엔 복잡한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지금 앉고 보니, TV에서 한 테러리스트가 동네를 순찰하던 경찰관 6명한테 차량으로 달려들어 6명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네요.
이야기는 어언 1890년, 오토만 투르크 통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유대인 무리가 2차 성전 기간의 대제사장이었던 “의인 쉬몬” 무덤터 주변에 마을을 짓고자 땅을 얼마 샀습니다.
이 지역은 12세기의 개인 의사였던 살라흐 앗딘, 즉 셰이크 자라의 이름을 딴 아랍 동네 옆에 있었습니다. 서로 붙어있던 두 마을은 1948년 독립 전쟁 때까지 불편하긴 해도 상대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유대인 가정들이 떠나고 요르단이 영국으로부터 이 지역을 넘겨 받습니다. 요르단은 주택들을 유대인들이 소유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그 집들로 옮깁니다. 1967년 6일 전쟁 중에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재탈환하고요.
이 동네 땅과 건물들에 대한 감독권이 두 위원회에 주어졌는데, 하나는 세파라디 유대인들 또 하나는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주택들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장기 임대인으로 그곳에 계속 살 수 있다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민들은 유대인들의 소유권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이어서 임대료 납부도 거부했습니다. 2001년, 다른 유대인들이 이곳 부동산 개발을 원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갈등이 커졌습니다. 팔레스타인 단체들과 이스라엘 좌파 활동가들은 이 동네에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판결을 늦추려 했지만, 결국 유대인들의 법적 소유권을 인정해줘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파 극단주의 단체들이 이 곳에 몰려왔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퇴거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주택은 13채에 불과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논란이 되어온 주택을 다 합쳐도 60채가 안 되고요. 최근 이 논쟁의 동네에서 좌파와 우파 시위자들 간에 폭력 사태가 터진 것은 미사일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으로, 전쟁까지 이어진 선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저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의 어느 곳에라도 가서 살 수 있다는 성경적, 역사적, 도덕적 권리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이지만, 이곳에서 70년을 살아온 사람들을 퇴거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실질적 이익이 충분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타협점을 찾는 것이 더 나은 지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희가 1990년대 초반 이스라엘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어렸던 저희 가족도 셰이크 자라에서 걸어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습니다.
이 문제를 담당하는 판사 및 정부 관계자들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또 이 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 및 아랍인들의 마음을 위해서 저희와 함께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