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이란 그리고 마지막 때
- Asher Intrater
- Mar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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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쿤 글로벌
이스라엘 예루살렘

I. 역사적 진실
에스더서는 세 가지 단계로 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역사적 진실의 측면입니다. 사건들은 실제였습니다. 예슈아보다 약 500년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 않은 책은 에스더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다른 어떤 책보다 더 잘 드러나는 듯합니다.
예컨대,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 바로 그날 밤, 아하수에로 왕은 잠을 이루지 못하던 중 모르드개가 어떻게 자신의 목숨을 구했는지 읽게 됩니다. 하만은 왕이 모르드개를 기리기로 결정했을 때 우연히 궁정에 서게 됩니다. 하만이 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상황이 부정적으로 보일 때조차도 하나님은 다스리고 계십십니다.
모르드개는 기쉬의 아들이니, 사울 왕(에스더 2:5)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하만은 아각 사람(에스더 3:1)으로, 아각 왕의 후손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보다 약 500년 전, 하나님은 사울이 아각을 죽이지 않았다고 벌을 주셨습니다. 그 벌은 지나치게 가혹해 보였습니다. 하만의 대량 학살 계획을 볼 때만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각을 처형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옳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가혹해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모든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정의롭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는 놀라운 은혜도 담겨 있습니다. 사울이 아각과 함께 실패한 반면 모르드개는 하만과 함께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믿음과 인내심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리더라도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II. 복음의 예표
에스더서의 제2단계는 복음의 예표입니다. 하만은 사탄, 예슈아는 모르드개의 예표입니다. 성경은 십자가 처형이 창세 전에 계획되었다고 말합니다(계시록 13:8, 베드로전서 1:20). 따라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모든 사건은 십자가 처형을 기대하며 하나님에 의해 조율되었습니다(누가복음 24:26-27, 사도행전 2:30-31, 베드로전서 1:10-11).
구약 성경에는 "십자가"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때때로 히브리어로 십자가를 "에쯔"라고 불렀습니다(사도행전 5:30, 10:39, 13:29). "에쯔"는 나무, 목재 또는 목조 구조물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에서 "에쯔"라는 단어는 7개의 구절에서 처형 장소(에스더 2:23, 5:14, 6:4, 7:9, 8:7, 9:13, 9:25)로 나타나며, 이는 "교수대"로 번역됩니다
악한들은 이 목조 구조물에 매달려 처형당했습니다. 의로운 영웅은 거의 교수형에 처해질 뻔했습니다. 그러다 바로 이 목조 구조물이 갑자기 패배를 승리로 역전시킵니다. 모리아산의 이삭처럼, 구덩이의 요셉처럼, 물고기 배에 갇힌 요나처럼 모르드개는 거의 죽임을 당할 뻔했던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구원받습니다. 모르드개는 다른 어떤 왕좌보다 높은 왕좌를 차지하며 왕국 서열 2위로 임명됩니다.
III. 마지막 때의 예언
제3단계로 보면, 에스더서는 종말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하만은 적그리스도, 에스더는 중보하는 교회, 모르드개는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을 상징합니다.
실제 사건은 현대 이란에 해당하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날 아흐마디네자드처럼 유대인의 멸망을 요구하는 악한이 있었습니다. UN을 연상시키는 127개국의 연합이 있었습니다.
성경 히브리어에서 "적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가장 가까운 단어는 "쪼레르"입니다. 하만은 4번이나 "쪼레르"로 언급됩니다 (에스더 3:10, 8:1, 9:10, 9:24). 하만과 마찬가지로, 적그리스도는 유대인(그리고 기독교인)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열방을 연합하려고 할 것입니다 (계시록 13, 에스겔 38-39, 스가랴 12-14).
반유대주의의 뿌리는 에스더 3장 6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사탄의 인물이 메시아를 예표하는 인물에 너무 화가 나서 메시아를 죽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친척들에게도 복수를 원하는 모습입니다. 반유대주의, 적그리스도, 반기독교의 영도 비슷한 출처에서 나옵니다.
IV. 중보하는 신부
에스더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부" (에베소서 5:23-32, 계시록 12)의 아름다운 모본입니다. 에스더는 왕과 함께 경배하는 신부의 친밀감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유대인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에스더는 이를 피하려 하지만 유대 민족에 대한 끔찍한 고난에 휘말리게 됩니다. 에스더는 스스로의 운명과 신부의 친밀감이라는 특권이 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개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예언적인 도전을 받습니다 (에스더 4:14, 로마서 11:11-15).
그녀는 유대 민족을 위한 중보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부르심에 충격을 받았지만, 예언적인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그녀의 아름다움, 은혜, 기도, 금식 덕분에 재앙은 승리로 바뀌고 왕국은 성도들의 손에 되살아납니다. (그리스도와의 신부적 친밀감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마지막 때의 에스더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극적 흐름 가운데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스더 8:17).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첫째, 고난 가운데 복음을 통한 영혼의 큰 수확, 둘째, 이스라엘의 언약과 유대적 신앙의 뿌리에 다시 연결되는 많은 성도들입니다.
V. 이란의 운명
에스더서는 이란의 밝은 예언적 운명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페르시아는 분쟁과 반유대주의의 근원이었지만 승리를 가져온 믿음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이란에 강력한 지하 교회가 생겨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교회는 숫자가 늘어나고 신앙을 지키며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동일시할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위대한 왕인 고레스와 아하수에로는 이슬람보다 1,000년 전에 이스라엘 국민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페르시아는 아랍이 아닙니다. 그들의 뿌리는 이슬람이 아닌 성경적 신앙에 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협력 관계는 2,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