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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와 번아웃

Writer's picture: Ron CantorRon Cantor

번아웃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혹은 정서적 탈진 상태”를 가리킵니다.”[1] 의욕이 넘치는 사람은 결국 어느 시점에서 번아웃에 직면하게 됩니다.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눠주고, 스스로는 정신적, 영적 건강을 위한 자원이 고갈되는 상태입니다. 성경에는 사실상 번아웃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찾지 않아서 모르는 것 뿐입니다. 다윗, 욥, 모세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어떻게 말하는지 보십시오.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민수기 11:14~15)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엘리야

그러나 엘리야와 이세벨의 이야기로 가봅시다.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는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3년 반 동안 가뭄이 지속될 것을 예언한 후, 주님께서 그를 아합 왕에게 보내셔서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갈멜산에 모으라고 하십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담대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강대국 왕에게 도전하기를 겁내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선지자 한 명과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 간에 어마어마한 대결이 벌어집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자기 신들로부터 응답을 얻지 못하지만, 여호와의 선지자가 하늘에 간구하자 불로 응답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속였던 거짓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그의 기도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엘리야는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850명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가 하나님인가 바알이 하나님인가”하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두려움에 무너지겠지만, 우리의 선지자 엘리야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희생 제물을 바칠 때, 엘리야 선지자가 앞으로 나서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열왕기상 18:36~38)


그리고 이스라엘에 영적 소성이 일어납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열왕기상 18:39).


일련의 강력한 사건들 가운데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 비가 오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면서, 그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충만하여 이스르엘까지 22km를 넘게 달립니다. 아합 왕은 병거를 타고 같은 길을 갔지만, 엘리야는 맨 몸으로 뛰었는데 더 빨리 갔습니다.


반전

이 모든 위대한 승리를 거둔 엘리야는 분명 의기양양했을 겁니다. 강력한 승리를 거둔 뒤가 어떤 기분인지 저는 확실히 압니다.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아합이 보고를 하자 (둘의 결혼은 상당히 엉망진창이었음), 이세벨 왕비는 분노합니다. 그녀는 엘리야에게 사신을 보내 죽은 목숨이라고 전합니다.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왕상 19:2).


지금까지 읽은 모든 내용을 볼 때, 만약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다면, 우리는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가서 대결할 것이라고 추측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극적이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성경은 엘리야가 두려워서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만약 번아웃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엘리야에게서 눈치를 못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에게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과신한 사람의 전형적 징후가 모두 있습니다. 영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모두 지쳐 있습니다. 그는 심각한 상황적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 (그의 우울증이 화학적인 작용 때문이 아니라, 생활방식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큰 승리 후에 마귀의 공격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지켜주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번아웃은 단순한 마귀의 공격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마귀를 꾸짖는 권세가 있기 때문에 더 안 좋습니다. 번아웃은 우리 몸이 기름이 떨어진 차와 같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멈춰서면서 “이제 끝났다!”라고 하는 것처럼요. 하루종일 여기저기 꾸짖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9장에서 엘리야가 죽음의 위협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봅시다.

1. 두려워 합니다(3절).

2. 부르심으로부터 도망칩니다(3절).

3. 자신의 종을 브엘세바(이스라엘 남부 사막 도시)에 남겨둡니다(3절).

4.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홀로 광야로 갑니다(4절).

5.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고 기도합니다(4절)!

6. 자신의 인간적인 면을 깨닫습니다-“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4절).

7. 소망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번아웃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 한때 그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거짓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에서 없애고 영적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불과 며칠 후에는 자기 연민에 빠져 하나님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시는 방법

여러분이 혹여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여기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마치 그 상태가 끝이 안 날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문제를 처치하는 순간 바로 정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고쳐주셨는지 주목하십시오.


1. 엘리야가 잠이 듭니다(5절).

2. 천사가 어루만집니다- 저는 여기서 일종의 영적 생명이 주입되었다고 생각됩니다(5절).

3. 음식을 받습니다(6절).

4. 먹고 마시고 다시 잠이 듭니다.

5. 천사가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음식을 주어 먹게 합니다(7절).

6. 하나님께서 40일의 여정을 위한 초자연적인 힘을 주십니다(8절).


반스와 컴포트는 주석을 통해 이렇게 제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탄식에 응답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알고 계십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낮잠과 약간의 음식 뿐입니다.”[2] 저는 육체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시는 조합이 있다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저는 이 40일 간의 여행을 안식의 기간으로 봅니다. 주님 안에서 힘을 새롭게 하고 육체적인 휴식과 영양을 섭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벳시 세인트 어맨트 해덕스는 “엘리야는 번아웃이 왔다고 벌 받지 않았습니다. 돌보심을 받았고, 자신의 목적을 계속 이루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영적, 육체적 필요를 충족시켜주신 것과 동일하게 탈진은 육체적 피로의 문제 뿐만 아니라, 엄청난 영적 공격이기도 했습니다. 이세벨과 그 배후의 마귀의 세력은 강력했습니다.


저는 놀라운 승리들을 경험하는 사역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너무 놀라서 주저앉아 하나님 은혜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제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된 것이 즐거웠습니다. 열매들은 굉장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런 것을 보고 더 해보라고 했을 때, 저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한편으로, 제가 너무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게 엘리야의 순간이 올 때까지는…


그 순간이 올 때는 아주 세게 옵니다. 모든 게 잘 되고 있다 가도 다음 날은 꼼짝도 못하게 됩니다. 그것은 제가 유한한 인간이라는 사실과, 제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필요에 대해 다시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저처럼 열성적인 사람들에게 번아웃은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제게 크게 다가온 구절 중 하나는 야고보서 5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약 5:17~18)


첫 번째 부분입니다. 결국 엘리야는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의 위에 있었기에 크고 놀라운 일을 행했지만, 그는 유한한 능력과 한계를 지닌 인간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안식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잠시 사역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40일이 지났을 때는 복귀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번아웃을 겪고 있을 때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는 이들은 인생이 다시는 예전 같이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로 하여금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거두시라고 기도하게 만들었다니 말 다했죠. 그런데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평생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1. 불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 자신을 압도하는 것들과 분리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3. 좋은 영적, 정신적 상담이 필요합니다.

4.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거절 못하고 해주기 전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5. 편안한 휴가가 필요합니다.

6. 다른 사람들과 짐을 나누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이러한 일들을 경험합니다. 엘리야의 상담가는 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호렙 곧 시내산에서 40일 휴가를 얻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엘리야를 제2의 모세로 봅니다(미주 4번 참조). 앞서 말했듯, 모세도 번아웃과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40일의 여정 가운데 모세를 40일 동안 만나셨던 그 장소, 시내산으로 엘리야를 이끄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꼭 필요한 휴식과 건강식을 얻습니다. 그 시간이 끝날 무렵, 다시 경기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불만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곧 엘리사라는 충실한 조력자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모세(위의 내용 참조), 다윗, 엘리야는 모두 하나님께 불평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불평도 매우 건강할 수 있습니다. 마크 치로나는 <소망의 끝자락에서>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민이 견디기에 너무 무거워 보일 때,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은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시편이 바로 그렇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욥기도 마찬가지입니다.”[3]

이제 잘 쉬고 잘 먹은 엘리야가 주님께 여쭙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0)


주님께서 계속 그를 돌보아주셨지만 모세에게 하셨던 것과는 다릅니다. “엘리야는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임재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로 임재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너는 나를 불로 응답하는 자로 알았지만, 말년에는 너를 사랑하는 부드러운 자로 알게 될 것이다.”


번아웃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진정으로 이해할수록 우리는 더 건강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내셔서 그를 대신할 엘리사에게 기름붓는 것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일을 시키셨습니다. 한동안 저는 이 장면을 보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거절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상 이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이세벨에게 맞서지 못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엘리사로 대체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다르게 봅니다. 무엇보다도, 엘리야는 이 일 후에도 16년 동안 계속 사역합니다. 둘째로, 저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인간적인 동역자를 둘 것을 요구하셨다고 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는 광야로 도망칠 때 종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엘리야는 약간 외톨이 성향이었는데 그것은 건강한 게 아닙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와 대화하는 것을 보면, 제자를 맡는 것에 대해 별로 기뻐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선지자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엘리야에게 행정적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 3년 후에 그는 이세벨에 대한 실패를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을 계속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치유를 위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십니다. 바로 다음인 21장에 엘리야가 나옵니다. 다시 한 번 그는 아합과 대결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서 그 일을 끝냅니다. 그는 이세벨에게 직접 말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위협했던 그 사람, 3년 전에는 피해서 집으로 도망쳤던 바로 그 사람의 죽음을 예언합니다.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왕상 21:23). 이것은 엘리사가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그가 이스르엘로 들어갔을 때 내시들이 이세벨을 창 밖으로 던져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는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왕하 9:35~37).


이제 새로워진 엘리야는 19장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고 간구한 엘리야와 얼마나 다릅니까! 치유되었고, 하나님의 더 큰 계시와 더 큰 용기, 더 큰 겸손을 받았으며, 자신의 인간적인 면을 인정하였고 하나님을 섬기려는 열정은 회복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엘리야처럼 모든 것이 불리하게 다가오고 정신적, 영적 에너지가 고갈된던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엘리야와 같이 하십시오. 그러면 두려움, 불안, 우울이 가시며 마침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의존하는 사람들과 힘든 대화를 나누며, 여러분이 과거만큼 할 수 없거나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해야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애쓰던 상황에서, 제 친한 친구는 누구도 없어서는 안될 사람은 없다고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는 여러분 한 사람에게 모든 일을 하게 만드실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그에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가 모든 것을 하기 원하신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닌 짐들을 스스로 떠맡았습니다. 그런 짐들을 내려놓으니, 영적인 삶이 얼마나 빨리 회복되는지 놀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1] “How to Recognize (And Heal) Spiritual Burnout,” Vantage Point, accessed November 3, 2022, https://vantagepointrecovery.com/how-to-recognize-and.../

[2] William H. Barnes, 1-2 Kings, ed. Philip W. Comfort, vol. 4b, Cornerstone Biblical Commentary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12), 162.

[3] Chironna, Mark. On the Edge of Hope (p. 143). Baker Publishing Group. Kindle Edition.

[4] William H. Barnes, 1-2 Kings, ed. Philip W. Comfort, vol. 4b, Cornerstone Biblical Commentary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12),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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