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족의 비전
- Asher Intrater
- Jul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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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쿤 글로벌
이스라엘 예루살렘

요한복음 17장 21-23절에 기록된 예슈아의 기도에는 하나님과의 하나 됨, 그리고 서로 간의 연합에 대한 깊은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창세 전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니, 그들로 온전하게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신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21절에서는 서로 간의 연합보다 하나님과의 하나 됨이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합은 하나님과의 하나 됨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순서상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하나 됨입니다. 이 온전한 그림을 구성하는 첫 번째 조각은 바로 예슈아에 대한 “믿음”입니다.
22절에서는 성령의 영광을 공동으로 체험함으로써 더해지는 차원이 나옵니다. 이 하나 됨의 두 번째 요소는 성령의 불 즉 뒤나미스와 카리스마를 받는 것입니다.
23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 곧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경험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 번째 요소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속의 아름다운 사람들
이 하나 됨과 연합이 깊어질수록, 전 세계 곳곳에서 영적으로 하나 된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떠오르고 있는 지구적 에클레시아입니다. 각 민족 가운데서 부르신 이들은 특별한 ‘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출애굽기 19:5-6, 베드로전서 2:9)이 되어 갑니다.
이 에클레시아는 태초부터 자라오고 있으며, 우리 세대에 이르러 그 충만함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퍼즐 그림, 지구적 에클레시아가 온전히 맞추어지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이 공동체의 관계적 구조는 무엇일까요? 이 공동체는 단 한 사람이나 특정 사역이 ‘소유’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합니다. 어느 회의체나 공의회, 심지어 추기경이나 사도들조차 포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이 구조는 조직적이기보다는 관계적이어야 합니다. 관계에 중점을 두기 위해서는 자존심, 직위, 승진이라는 자아의 ‘짐’을 내려놓고 함께 모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관계의 틀은 무엇일까요? 모든 이가 포함되기 위해선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셨습니다(창세기 1장). 아브라함에게는 열방의 아비가 되라고 하셨습니다(창세기 17장).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우리 모두는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에베소서 3:14-15).
모든 인류의 원래 관계 구조는 무엇입니까? 바로 가족입니다. 열방이 포함된 한 가족.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예슈아는 아들이시며, 에클레시아는 그 원형인 가족의 발전된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로서 사랑과 존중 안에서 동등합니다. 이 지구적 가족과 에덴적 정원의 계획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참고: ‘지구적 믿음의 가족’이라 말할 때, 믿음의 공동체는 가장 먼저 지역 교회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실제 관계와 함께 삶을 나누고,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며, 떡을 떼고, 제자훈련과 장로의 목양을 통해 표현됩니다. 인체가 개별 세포와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메시아의 지체인 지구적 몸도 지역 교회 공동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가족
어떤 면에서 믿음의 가족의 시작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첫 가족 안에서 고통스러운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분열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가족 안에서의 모든 분열의 뿌리는 하갈과 사라 사이의 갈라짐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그 분열에서 오늘날 중동의 갈등이 비롯되었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간의 충돌도 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으로부터 각각 아랍 민족과 유대 민족이 태어났습니다. 만약 이 둘 사이의 상처가 치유된다면, 그 외의 모든 민족적, 국가적, 종교적 분열도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랍-유대 민족 간의 화해는 이 하나 됨의 그림 퍼즐의 네 번째 요소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슈아의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슈아는 우리의 죄를 나무에 짊어지셨고(이사야 53장),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마태복음 5:44). 이것은 단순한 화해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족이며, 언약이며, 하나 됨입니다.
이 언약적 돌파로 온 땅에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 19:20-25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예언 속에는 이집트, 앗수르, 이스라엘 사이를 잇는 하이웨이가 세워집니다. 그를 통해 전 세계에 축복이 흘러갑니다. 이 비전은 종종 “이사야 19장의 대로” 또는 “이사야 19장의 축복”이라 불립니다.
저희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아랍 형제자매들을 우선시하며 섬기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7:18에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스마엘이 주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이 기도는 이삭이 태어나기 직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메시아의 언약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통해 계승될 것임을 상기시키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마음은 이스마엘과 이삭, 두 아들을 모두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희가 메시아닉 유대인으로서 아랍 형제들을 사랑으로 높이며 섬길 때, 하나님의 축복이 부어집니다. 동일하게 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모든 민족과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상호 순복은 상호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지구적 가족의 다섯 번째 열쇠는 서로 존경으로 먼저 대하는 것입니다(빌립보서 2:3, 에베소서 5:21).
열방의 파수꾼의 데이비드 데미안과 저는 이 글로벌 가족 비전 안에서 아름다운 동역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저희는 서로를 존중하고 양보합니다. 저희 우정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과 이삭을 동시에 사랑했던 그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런 상호적인 존중과 배려는 이스라엘 안의 여러 교제 모임과 컨퍼런스들 안에서도 나타납니다.
저희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아랍 기독교 형제자매들을 사랑 안에서 높이며 섬기기를 원합니다. 아랍인들에게 양보한다고 유대인으로서의 부르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확증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관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이 먼저 태어나게 하신 것은 주권적인 뜻이었습니다. 동시에 메시아 언약의 상속자는 이삭이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교회의 이중적 회복
영적 축복은 항상 상호적입니다. 예슈아를 믿는 자들은 어떤 민족적 배경을 가졌든 믿음의 올리브 나무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주신 부르심 안으로 들어올 때, 열방은 이스라엘과 함께 접붙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로마서 11:17-21). 이 올리브 나무는 믿음의 유대적 뿌리로부터 자라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든 믿는 자들의 공동 역사입니다. 지구적 에클레시아의 열방은 이 공동된 역사에 정렬되어야 합니다. 글로벌 가족의 하나 됨을 이루는 여섯 번째 요소는 믿음의 유대적 뿌리입니다.
에스겔 37장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라는 놀라운 환상을 묘사합니다.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그들은 강한 군대로 일어섭니다. 이 부활의 환상은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뼈와 뼈로, 힘줄과 힘줄로 연결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영이 부흥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대언해야 합니다. “와서 불지어다!” (에스겔 37:9)
이 에스겔의 환상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것일까요? 아니면 전 세계 에클레시아를 말하는 것일까요? 혹은 실제 죽은 자들의 부활을 말하는 것일까요? 정답은 “예,” 셋 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 세계 교회, 죽은 자들의 실제 부활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뼈들이 생명을 얻은 후, 에스겔은 또 하나의 환상을 봅니다. 그는 두 개의 막대기를 손에 쥐어 하나로 합칩니다(에스겔 37:16-23). 이 환상 또한 한 가지 의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솔로몬 왕 이후 분열되었던 고대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의 통합입니다. 그러나 이는 전 세계 에클레시아가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연결되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민족을 “이스라엘 자손”이라 부르며, 국제적인 에클레시아는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표현합니다(에스겔 37:16).
글로벌 가족의 일곱째 요소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연합입니다. 요약해보겠습니다.
예슈아에 대한 믿음 – 요한복음 17:21
성령의 능력 – 요한복음 17:22
아버지의 사랑 – 요한복음 17:23
아랍과 유대 민족의 화해 – 이사야 19:20-25, 창세기 17:18
상호 양보 – 빌립보서 2:3, 에베소서 5:21
믿음의 유대적 뿌리 – 로마서 11:17-21
이스라엘과 교회의 연합 – 에스겔 37장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예슈아의 머리 되심 아래 하나가 될 것입니다(에베소서 1:10). 이 글로벌 가족은 하나 되어 가고 있습니다(에베소서 3:15). 이 거룩한 하나님의 실험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