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악의 뿌리이자 모든 성공의 열쇠
- Asher Intrater and David Ben Keshet

- Jan 15
- 4 min read

모든 악의 뿌리이자 모든 성공의 열쇠
티쿤 글로벌
이스라엘 예루살렘
-아셰르 인트레이터 & 다비드 벤케셰트
그의 형제들이 아버지가 그를 그의 형제들보다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는 한마디도 좋게 말할 수 없었더라… 그의 형제들이 그를 시기하더라. (창세기 37:4, 11)
질투는 마음의 상처로 이어지고, 증오로, 심지어 살인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주권적이시며 전적으로 선하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될 수 있을까요?
문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면, 나는 다른 사람 것을 보고 “왜 당신은 그걸 가졌지?”라고 할 수 있고, 그는 내 것을 보고 “왜 너는 그걸 가졌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게 들리지만, 너무나도 사실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질투한 이유는 아버지가 그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레아와 라헬, 두 어머니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 역시 서로를 질투했습니다. 라헬은 레아가 자녀가 많다는 이유로 질투했고, 레아는 라헬이 더 아름답다는 이유로 질투했습니다. 그들의 상호 간의 상처와 분노는 자녀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이러한 긴장을 반영하는 이름을 자녀들에게 붙였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보다 한 세대 전에는 야곱과 에서 사이에도 같은 역학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맨 처음으로 돌아가면 아담과 하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온 피조 세계를 소유하고 있었고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부의 50%가 한 아들에게, 나머지 50%가 다른 아들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망칠 수가 있었을까요?! 가인은 아벨을 질투했고, 분노했고, 결국 그를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보아라. 너는 이것을 이겨낼 수 있다. 너는 지금 상처받고 분노하고 있다. 악이 너를 덮치려고 기다리고 있다. 너는 그것을 거절할 수 있지만, 그 결정을 해야 한다.”
(창세기 4:5–6 의역)
이 모든 것은 한 대천사가 하나님을 질투하며 “나도 경배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사야 14:12–15, 에스겔 28:12–18) 그의 질투는 상처와 반역을 낳았고, 그는 사탄이라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 대신 자신을 예배하게 하려 했습니다. 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죄는 당신이 깨닫지도 못한 채 사탄의 뜻에 복종하고 그를 예배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은 세대를 거쳐 계속 죄를 지어 왔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피해자인 것처럼 보게 됩니다(피해 의식). 그 결과로 다른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합니다(무기화). 그리고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 느낍니다(자격 의식). 이것은 악한 영적 패턴입니다.
이것을 극복한 사람 중 하나가 요셉입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내려갔을 때, 그는 두 가지 혹독한 시험을 받았습니다.
상처를 받도록 하는 유혹: 그의 형제들은 그를 배신했고 죽이려 했으며, 결국 노예로 팔았다. 이집트에서는 거짓 고발을 당해 감옥에 갇혔다.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매일같이 받았던 성적 유혹.
오늘날에도 이 두 가지는 여전히 거대한 도전입니다. 하나는 지하드주의로 대표되는 살인적인 영이며, 다른 하나는 성적 부도덕의 음녀의 영입니다.
요셉이 이 시험들을 통과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서 상처를 키우다가 결국 살인과 간음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을 인격을 세우는 훈련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모든 경험은 그를 당대 최고의 지도자로 훈련시키는 과정이었고, 결국 그의 가족과 온 지역을 기근에서 구하게 했습니다.
수년 후 야곱이 죽자, 형제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끝이다. 이 모든 세월 동안 복수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우리는 죽었다.”
그러나 요셉의 대답은 전혀 예상과 달랐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창세기 50:15-20)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요셉은 마음 깊은 곳에서 두 가지를 믿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주권적이시며, 전적으로 선하시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기는 쉬운 개념이지만, 인생이 완전히 잘못 돌아갈 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원리를 지금 처한 어떤 상황에도 적용해 보십시오. 잠시 멈추어 말하십시오.
“하나님은 내 인생을 주관하고 계신다. 그분은 전능하시며 나를 위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그분과 함께하며 올바른 태도를 유지한다면, 악으로 보이는 것, 악으로 의도된 것조차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실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을 빚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부당하게 대하거나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에도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능하심을 믿으려 애쓰는 그 싸움이, 우리 안에 예슈아의 성품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이 예슈아의 사역으로 인해 질투하고 상처받았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악한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요한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가 한 말을 보면 놀랍습니다.
“사람이 만일 하늘로부터 주신 바 아니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27–30)
매우 급진적인 신학적 선언입니다. 전적인 주권과 전적인 선하심. 믿기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질투하지 않을 수 있는 열쇠입니다. 누군가가 마땅치 않게 무엇을 얻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잠시 그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 위해 정하신 것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요한처럼 우리는 스스로 메시아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슈아가 중심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상처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영광을 받으실 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해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슈아와 다른 사람들의 기쁨에 함께 참여할 수 있숩나다.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을 때, 우리도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슈아는 흥하여야 하고, 우리는 쇠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태도이며, 복된 삶의 열쇠입니다. 나쁜 상황처럼 보이는 것은 예슈아가 더 커지고 우리가 더 작아질 기회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목적은 그분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나쁠수록 기회는 더 큽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이 조금 더 커지도록 하고, 스스로 조금 더 작아지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예슈아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향하실 때, 여인들이 그분을 위해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사실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나를 위해 우느냐?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나는 오늘 운이 나쁜 것이 아니다. 이 일이 내게 일어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큰 선이 될 것이다.”
(누가복음 23:28 의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우리는 매일 이렇게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예슈아께 나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의 계획과 선하심과 빛과 사랑에 나를 드리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나의 유익을 위해 함께 작용하고 있다.”
그럴 때 우주 만물이 서로 협력하여 우리의 선을 이루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