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냐 고발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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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냐 고발이냐




I. 말의 곡해


사탄은 말을 비트는 자입니다. 처음 하와에게 접근했을 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1)”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을 비틀어, 빈정거림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의도에 대해 의심을 던진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사탄이 쓰는 방법인데, 분열을 일으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는 말을 비틀어, 불신을 일으키는데 그렇게 되면 상처 입는 사람이 생기고, 결국 분열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 섬기고 예슈아를 닮아갈수록, 우리에게 반하는 잘못된 소통과 말의 곡해는 더 많아집니다. 사람들이 마치 우리를 고발하기 위해 한 마디만 기다리고 있다가 침소봉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눅 20:20).


마귀의 입에서는 거절과 고발로 우리를 압도시키려는 말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올 것입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계 12:15).” 알레홈이라는 히브리어/아랍어는 “특정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한 비난과 비방의 광범위한 공격"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로 인해 우리는 악의 홍수 위로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사 59:19).


II. 고발이냐 변호냐


불신이 있을 때는 우리의 기도조차 부정적으로 바뀝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에 대한 비난과 불만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폭격합니다. 또는 “상담"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과 불만을 토하여, 몰래 악한 소문과 이야기들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고발을 하거나 변호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2:10 -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요한일서 2:1 -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고발(참소)하는 자는 사탄이곡 변호(대언)하는 분은 예슈아이십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서있습니까? 이미 고발자의 편을 차지하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또 변호하는 자리에도 계신 분이 있죠. 우리는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자문해봅시다. “나는 형제자매들을 변호하는 입장에 있는가, 그들을 비방하고 있는가? 나는 형제들의 고발자인가, 변호자인가?

III. 언약과 십자가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떻게 변호자가 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언약적 대화 2) 십자가를 닮아감.


우리가 누군가를 아프게 했음을 안다면, 그들에게 찾아가서 화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것은 예배, 주님과의 만찬, 십일조 그리고 종교 예식보다도 우선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누군가 우리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들을 찾아가는 것 역시 우리의 의무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 18:15).” 누가 먼저 갑니까? 상처를 받았어도 우리가 갑니다. 상처를 줬어도 우리가 갑니다. 어떤 쪽이든, 우리에게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서 목적은 상대방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화해하고, 관계를 치유하며 형제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언약적 대화, 그리고 일방적이고 충만하며 반복적인 용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에게 죄 지은 형제를 얼마나 용서해야 하냐고 여쭸을 때, 예슈아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 18:22).” 이렇게 은혜로운 용서의 태도가 십자가의 태도입니다.


예슈아께서는 우리가 용서 받을 가치가 없을 때에 용서를 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태도가 언약적 대화보다 선행됩니다. 아무리 대화를 많이 한다 해도 우리가 십자가로부터 오는 일방적 용서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화해가 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합니다 (골 3:13). 아프고 힘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걸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화해를 이루고 연합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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