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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

이스라엘 예루살렘

티쿤 글로벌



성경 속에도,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약속이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소망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믿음은 이성을 넘어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분명한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끝처럼 보이는 그 순간이, 사실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돌파 직전의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이른 시점의 강력한 예 가운데 하나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이삭은 바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아들이었습니다 (창세기 17:19; 21:12).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신 모든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신약성경은 그 순간 아브라함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 당시 성경 역사 속에는 부활의 기록이 전혀 없었습니다. 선례도 없었고, 의지할 증언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경험을 넘어, 논리를 넘어, 이해를 넘어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잃을 것처럼 보였던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창세기 22:11–14). 이삭은 살았고, 하나님은 다시금 언약의 복을 확증하셨습니다 (창세기 22:15–18).  끝처럼 보였던 순간이 더 큰 약속으로 나아가는 문이 되었습니다.


이 패턴은 예슈아의 십자가 사건에서 궁극적으로 나타납니다.  제자들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그들의 메시아는 죽으셨습니다. 소망은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믿어왔던 모든 것이 단 한 오후 만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누가복음 24:17–21). 어둠의 세력조차도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22:53).


그러나 하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셋째 날, 예슈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4:6–7). 패배처럼 보였던 사건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부활을 통해 죄 사함이 주어졌고 (로마서 4:25),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졌으며 (고린도후서 5:18–19), 인류에게 참된 자유가 임했습니다 (요한복음 8:36).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문이었습니다.


성경은 또한 동일한 패턴을 따르는 미래의 한 순간을 가리킵니다. 스가랴 12–14장에서는 모든 나라가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때를 말합니다 (스가랴 12:2-3, 14:2). 도성이 공격 받고, 포로로 잡혀가며 황폐케 되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모든 게 사라진 듯합니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순간에 주께서 친히 개입하십니다. 로마서 11:26의 약속을 성취하며 육체적 구원과 영적 구원이 동시에 임합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완전한 파멸처럼 보였던 순간이 민족적·영적 구속으로 바뀝니다.


이것은 단지 성경 역사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를 향해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환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둠이 확장되고 소망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를 계속하다가, 결국 좋아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하여 우리에게 이 진리를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탈진한 듯한 순간에 당신의 가장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가 많습니다 (시편 46:1, 이사야 60:1-2).


지금 개인적인 위기를 겪고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끝처럼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께서 가장 큰 돌파를 준비하시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서는 소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 영광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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