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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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동기

Updated: Aug 22, 2022



하나님 왕국에서 순전한 동기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마음이 올바른 사람들이 그곳에 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봌헨 레바봍)”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역대상 28장 9절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올바른 동기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추어진 어떤 사리사욕이나 이기적인 동기로 할 때가 있습니다.


잠언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사람이 거듭나면 가장 기본적인 마음의 동기가 변화됩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람의 일차적인 영적 본능은 올바르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다음에 수정해야 할 더 미묘한 이기적 동기가 여러 겹으로 생깁니다. 이를 성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주님을 섬기려 하면서도, 심지어 전임 사역을 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잘못된 동기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사람의 행동이 겉으로는 올바르게 보여도 마음의 동기는 틀릴 수 있다는 보편적 현상을 다룹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거나 금식하며 기도하는 등 칭찬받을 만한 행동도 다른 이들이 여러분을 영적인 사람으로 여기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선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이 올바른 행동인지 정의해줍니다. 그리고 율법에 정의된 행동들은 실제로 올바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올바른 행동 뿐만 아니라 올바른 동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은 정욕과 교만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올바른 행동도 교만과 정욕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교만은 사람을 영적 진리에 대해 눈멀게 하고(마 11장), 정욕은 도덕적 가치에 대해 사람을 속입니다(엡 4장). 율법은 올바른 행동을 다루고, 십자가는 올바른 동기를 다룹니다. 어떤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올바르기 위해서는 그 안에 자아의 죽음이라는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예슈아(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모든 의로운 행위의 궁극적 귀감입니다. 십자가는 장차 올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십자가는 잘못된 동기를 걸러내는 체이자, 우리 삶이 심판 받을 때 사용될 테스트입니다.

고린도전서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올바른 동기는 장차 올 세상에서 우리가 심판 받게 될 부분입니다. 이 땅의 삶에서 겉으로 보기에 선한 행위라도 자기 중심적 동기에서 기인한 것에는 상급이 없을 것입니다.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들에는 상급을 주어질 것입니다. 때론 저는 얼마나 많은 리더십 사역이 자기 합리화적 동기에서 이루어지는지 생각하면 두렵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저희에게는 이것과 관련된 특정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곳은 “성지”이기 때문에 여기는 사역할 만한 어떤 매력이 있습니다. 영적 전쟁이 있기 때문에 열매 맺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자들”보다 “사역자들”이 더 많은 국가일 것입니다. 이곳의 사역은 무엇이든지 간에 사진 찍어서 출판되고 과장된 다음 모금 목적으로 이용됩니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도전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우소서.


데살로니가전서 2:3-5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순수한 동기로 사역해야 합니다. 설교할 때 인본주의적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돈을 얻어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사역을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지역 교회에 순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의 양 떼 수를 늘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월급을 올리고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떤 이들은 도덕적 도전 없이 은혜의 신학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그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육적인 생활 방식을 정당화하는 하위 문화를 생산해냅니다(갈 5:13). 어떤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순종하라고 하는데, 그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 아니라, 자신들의 정욕을 채우도록 그들을 조종하기 위해서 입니다. 때로 우리는 심지어 기도조차도 자신의 정욕을 채우는 감춰진 동기로 하기도 합니다(야고보서 4:3)!


올바른 동기에 대한 한 가지 현저한 예외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복음 전도는 생명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소방관이 화재에서 누군가를 구조한다면, 그가 마초가 되기 위한 동기로 수행하는지 여부는 상관 없습니다. 그게 뭐 어떻습니까? 사람만 구하면 됩니다. 예슈아께서 거짓 동기를 가지고 당신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자들을 꾸짖으셨을 때도(마 7장) 복음 전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활동입니다. 오늘날 많은 리더들이 이기적으로 다른 이들을 조종하게 된 것은 순전한 개인 복음 전도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떤 이들은 컴퓨터는 그만하고, “리더십” 미팅도 그만두고, 다시 불신자들과 구원에 관해 나누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기의 순수함은 성경 공부의 중심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성경을 묵상하는 것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하는 경건의 시간이라는 “방법론”은 말씀을 내면 깊숙이 침투시켜 불순한 동기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의도를 바로 잡는 매일의 “수술”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점검 받으며 내적 동기가 변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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