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구약성경- 2부
- Asher Intrater

- Sep 26
- 3 min read
티쿤 글로벌
이스라엘 예루살렘

재림 때의 실제 전쟁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우리는 예슈아께서 총사령관으로 돌아오시고, 천사 군대가 그 뒤를 따르는 것을 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1, 14절-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라”
여호수아 5:13-15에서 예슈아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총사령관으로 나타나셨지만, 그분과 함께하는 군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왕기하 6:17에서 엘리사는 하늘의 군대를 보았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총사령관은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은 여호수아 5장과 열왕기하 6장의 결말입니다. 여호수아의 역사적 배경은 가나안 사람들과의 전쟁이고, 열왕기하에서는 아람 사람들과의 전쟁입니다. 이러한 맥락 없이는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오는 하늘의 전쟁을 오해하여 당시에 실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스가랴 14장은 이 전쟁의 지상의 측면을 묘사합니다. 세상의 열국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2절). 예슈아께서 그들과 싸우러 돌아오십니다(3절). 그분의 발이 감람산 위에 서십니다(4절). 그분은 하늘 군대와 함께 합니다(5절). 요한계시록은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고, 히브리 선지자들은 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체 그림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관점이 모두 필요합니다.
네 개의 군대가 개입하는데, 세 군대는 크고 하나는 작습니다. 천사들의 큰 군대, 마귀들의 큰 군대, 열국의 큰 군대, 그리고 이스라엘의 작은 군대가 있을 겁니다. [이스라엘 군대에 속한 메시아닉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미가엘은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 싸우는 임무를 맡은 천사 사령관입니다(다니엘 12:1).
에덴동산의 회복
요한계시록 6:14은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렸다고 묘사합니다. 요한계시록 6장은 이사야 34장 4절을 인용합니다.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요한계시록 19:15은 예슈아께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를 밟으시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는 이사야 63:3을 인용한 것입니다.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요한계시록 21:1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묘사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이사야 65:17을 인용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요한계시록 21:23은 세 예루살렘이 해와 달의 비침이 필요없다고 묘사합니다. [참고: 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성을 비출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이사야 60:19을 인용합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요한계시록 21:12은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딴 열두 문이 있는 새 예루살렘을 묘사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에스겔 48:31을 인용합니다.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에는 이사야, 에스겔, 스가랴의 여러 구절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묘사의 맥락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지상에 메시아 왕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이 없다면 요한계시록은 힌두교의 열반이나 할리우드식 우주 판타지로 오해될 것입니다.
선의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요한계시록을 성경적 회복보다는 환각적인 환상으로 여깁니다. 따라서 종말 예언의 전반적인 흐름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무의미해졌지만, 우리 세대 복음 메시지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은 생명수와 나무와 열매의 강을 묘사합니다. 이는 에스겔 47:1-12의 예언의 연장선입니다. 또한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창조 세계의 대체가 아닌 에덴동산의 회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체 신학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해서도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대체가 아닌 회복의 사역을 하십니다.
태초부터 계획된 종말
요한계시록의 구약적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들은 마지막 몇 장에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세 장은 창세기의 처음 세 장과 일치합니다.
창세기의 시작 부분에서는 창조, 에덴동산의 조성, 아담과 하와의 결혼, 그리고 뱀의 승리가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새 창조, 에덴동산의 회복, 예슈아와 그의 신부의 결혼, 그리고 뱀의 패배가 나옵니다. 창세기에서는 인간이 죄를 짓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끝에서 세 번째)에서 죄는 최후의 심판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창세기 3장의 뱀이 실제로 사탄이었다고 설명합니다.]
합리적인 기술자, 건축가, 시공업자라면 건물의 모든 나사, 철사, 그리고 세부 사항까지 이미 작성된 청사진에 계획되어 있기 전까지는 결코 첫 벽돌을 쌓거나 첫 삽을 뜰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기 전에도 그분은 이미 요한계시록의 끝을 계획하셨습니다. 랍비들은 토라와 메시아가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이전에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땅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마태복음 25:34, 에베소서 1:4, 베드로전서 1:20, 요한계시록 13:8) 당신의 왕국을 계획하셨습니다. 또 다른 랍비 격언에 “마지막에 행해질 것이 가장 먼저 계획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모든 것은 요한계시록의 최종 완성을 이미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책의 첫 페이지를 쓰시기 전에 마지막 몇 장에 대한 행복한 결말을 계획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