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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거부한 분이 우리의 속죄가 되시다

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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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이스라엘 소재 티쿤 글로벌



사도행전 3장을 읽을 때면, 저의 시선은 대개 ‘만물의 회복’(행 3:21)에 관한 베드로의 말씀으로 바로 향합니다. 이 구절은 특히 이스라엘과 예슈아의 재림,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최근에 이 장을 다시 읽다가 전에는 미처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던 다른 점이 저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메시지 서두에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행 3:14)고 말합니다. 그 말씀을 히브리어로 읽을 때, 한 단어가 제게 유독 두드러졌습니다. 바로 ‘크파르템(כפרתם “너희가 거절했다”)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 단어의 소리는 욤 키푸르(대속죄일)가 다가올수록 특히 큰 의미를 갖는 또 다른 히브리어 단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바로 카파라(כפרה 속죄)였습니다.


크파르템. 너희가 그분을 거부했다. 카파라. 속죄.


이 연결은 베드로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강력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그는 저희 동족에게 그들이 예슈아를 거부했다고 분명히 말하지만, 고발이 멈추지 않습니다. 불과 몇 구절 뒤에 그는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행 3:19)고 말합니다. 그분을 거부했던 이들은 여전히 그분께로 돌아도록 초청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거부했던 바로 그 예슈아가 그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신 분이셨습니다. 요한은 훗날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슈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신,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2)고 합니다. 그들은 그분을 크파르템(거부했지만), 그분은 그들의 카파라(속죄)가 되셨습니다.


이 연결은 욤 키푸르, 곧 속죄일을 맞이하는 이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나라 전체가 거의 완전히 멈춰 서다시피 합니다. 가게들이 문을 닫고 대중교통이 운행을 멈추며, 평소에는 매우 분주한 도로들이 조용해지고 그 거리에는 아이들이 자전거와 스쿠터를 타고 다닙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25시간 동안 금식하고, 회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며, 하루종일 죄의 고백과 회개와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반복됩니다. 심지어 많은 세속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욤 키푸르는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날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카파라, 즉 속죄에 대한 질문은 이스라엘에서 단순히 고대 성경의 개념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 번, 그것은 이스라엘의 국가적 의식의 가장 중요한 자리로 다시 떠오릅니다. 그러나 예슈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 답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슈아께서 우리를 속죄해 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메시아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를 통해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9:11–12). 욤 키푸르가 표현하는 용서에 대한 갈망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다시 사도행전 3장의 한 부분으로 저를 돌아가게 합니다. 제가 특히 주목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베드로의 부르심은 단지 죄가 지워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주의 앞에서 새롭게 되는 날”, 곧 회복의 때가 임할 것에 대해 말하며, 궁극적으로는 “만물을 회복하실 때”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행 3:19–21). 회개, 속죄, 새롭게 됨, 그리고 회복은 모두 하나의 동일한 메시지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메시아를 거부했던 한 민족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의 회복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거부가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 못했고, 그들의 실패가 회개로 돌아오는 문을 닫아버리지도 못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욤 키푸르는 예슈아의 속죄가 갖는 의미를 묵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때입니다. 바울도 이와 같은 마음을 품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롬 10:1).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일합니다. 저희 동족이 금식하고 기도하며 카파라를 구하는 이때, 그들이 이미 속죄를 이루신 그분을 알아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욤 키푸르에 저희는 이스라엘에서 금식하며 기도할 것이며, 여러분도 함께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눈을 열어 예슈아를 바라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가정들을 위해, 젊은이들을 위해, 종교 지도자들을 위해, 그리고 지역 공동체 전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희 민족이 한때 거부했던 그분이 바로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저희 민족은 그분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속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라는 초대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이번 욤 키푸르에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는 일에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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