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을 절기
- Asher Intrater

- Oct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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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쿤 글로벌
이스라엘 예루살렘

토라(모세 율법)의 절기는 히브리어로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하그(Chag) – 축제를 의미하며, 원 안에 모이거나 춤을 추는 어근에서 유래함
모에드(Mo’ed) – 운명이나 목표를 의미하는 어근에서 유래한 “정해진 시간”을 의미함
하그는 축하의 측면을 강조하는 반면, 모에드는 예언적 의미를 강조합니다.
두 번의 메시아 강림과 연관된 두 가지 절기
토라의 절기는 봄과 가을에 각각 세 가지씩 두 그룹으로 나뉩니다. 봄 절기는 예슈아의 초림과 관련이 있고, 가을 절기는 재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초림 당시의 세 가지 위대한 구원 사역은 모두 관련된 봄의 절기 날짜에 이루어졌습니다.
페쌐흐(유월절) – 십자가
오메르(초실절) – 부활
샤부옽(칠칠절) – 오순절 또는 성령 강림
마지막 때 예언에서 우리는 또한 세 가지 주요 사건들, 곧 대환난, 재림, 천년왕국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이 그 사건을 상징하는 절기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이해합니다.
테루아(나팔절) – 대환난
키푸르(속죄일) – 재림
수콭(초막절) – 천년왕국
나팔에 대한 혼란 해소
욤 테루아(레 23장)와 욤 키푸르(레 25장)에 나팔을 불라는 명령을 두고 여러분들 간에 약간의 혼란이 있습니다.
욤 테루아에 나팔을 부는 것은 여리고 전투(수 6장)와 이스라엘 진영 동원(민 10장), 그리고 다양한 종교, 정부, 군사 집회에서 계속되었습니다. 테루아를 알리는 쇼파르(뿔나팔) 소리는 행동을 촉구하는 신호이자 예언적 경고입니다.
성경에 언급된 대부분의 나팔은 욤 테루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나팔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나팔에서 성취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나팔은 이 세상 왕국들이 예슈아의 왕국에 정복될 것임을 선포합니다(계 11:15). 이는 여리고에서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백성들을 풀어주고 앞으로 나아가 그 성을 점령하게 했던 것과 같습니다(수 6:20). 이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무력으로 왕국을 차지할 준비를 하라는 부르심입니다(마 11:12, 단 7:18). 이는 왕국의 승리로 이어지는 영적 전쟁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일곱 번째 나팔은 “마지막 큰 나팔”이 아닙니다. 마지막 나팔은 욤 키푸르와 관련 있으며, 희년의 시작을 상징하기 위해 불립니다. 그 특별한 나팔은 다음 구절들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9:13, 16, 19 – 시내산에서
레위기 25:9 – 욤 키푸르
이사야 27:13 – 죽은 자의 부활, 휴거
마태복음 24:31 – 재림, 휴거
고린도전서 15:52 – 재림, 부활, 휴거
데살로니가전서 4:16 – 재림, 부활, 휴거
이 특별한 나팔은 하나님 당신의 나팔이며, 역사상 단 두 번만 불렸습니다. 한 번은 시내산에서, 한 번은 재림 때입니다. 예슈아께서 하늘 군대를 이끌고 강림하실 때 친히 다시 불릴 것입니다(계 19:11). 가브리엘이나 미가엘 같은 천사장이 그 날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살 4:16에 대한 오해), 하늘 군대의 사령관 예슈아께서 공격 명령을 내리실 것입니다(수 5:13). 성경적 패턴에 따르면, 그 순간은 욤 키푸르의 희년 나팔 소리 때 일어나는는 겁니다.
성전 제사장직의 가장 큰 날은 욤 키푸르였는데,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묘사한 가장 큰 날은 심판의 날, 곧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욜 2:1, 31)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가장 큰 날은 예슈아의 재림입니다. 제사장들의 “큰 날”, 선지자들의 큰 날, 메시아 왕의 큰 날은 모두 같은 날을 가리킵니다. 성경적 패턴은 일관됩니다.
초막절의 예언적 의미
랍비들은 초막절을 대절기(The Great Feast)이라고 부르며, 또한 추수-수장의 절기라고도 합니다. 토라는 이 절기에 기뻐하는 것을 매우 강조하며(신 16:15), 오직 기쁨만 있어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모든 명절과 마찬가지로 초막절에도 세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1. 농경, 2. 이스라엘의 출애굽, 3. 새 언약
이 예언적 성취는 스가랴 14:6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이사야 27:13 비교)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구절의 성취를 위해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옵니다. 최종적인 성취는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언 – 이 절기는 미래에 기념될 것이므로 예언적 의미를 지닙니다. 중요합니다.
현재 – 과거에 명령되었고 미래에 예언된 것이라면, 토라는 유효해야 하며, 절기들은 오늘날에도 의미를 지녀야 합니다. 이는 관련성이 있습니다.
국제적 – 이 절기는 유대인만의 절기가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국제적이고 다문화적이며 세계적인 기념 행사입니다. 이는 엄청난 의미를 지닙니다.
개혁 –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함께 이 절기를 기념하려면 두 사람 사이에 역사적인 화해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연합을 의미합니다.
축하 – 전쟁과 환난 후에는 행복한 결말, 즉 기쁨과 평화, 승리의 때가 올 것입니다. 이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천년왕국 – 이 절기는 재림 시 큰 전쟁이 끝난 후에 일어나므로, 천년왕국이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 문자적인 것임을 증명합니다. 이는 실재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 모든 민족이 예슈아의 천년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그분의 지상 보좌가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그곳이 중심입니다.
예루살렘을 놓고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가랴 14장 16절은 2절과 평행적입니다.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16절에서는 그들이 경배하러 오고, 2절에서는 싸우러 옵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예루살렘으로 이끌려 올 것입니다.
예슈아의 영은 그분의 백성을 예배로 이끌어 오고, 그분의 원수들은 싸우러 이끌려 올 것입니다. (3절은 주님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올 것입니다. 선택은 그들이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올지 아니면 거기서 왕을 경배하러 올지 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편에 서는가입니다.


